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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나도 비용은 남는다 — 이란 전쟁 106일이 한국 증시에 남긴 것

이란 전쟁 106일, 왜 코스피는 유가보다 환율에 더 크게 흔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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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선 에서, 지금 시장은 AI 기업 자체보다 AI가 만들어낼 생산성에 투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그 글을 쓰고 나서 질문이 하나 생겼다. AI가 아무리 생산성을 높여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플레이션이 있다면? 마침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106일이 지났다. 이제 전쟁은 일단 봉합 국면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 글은 그 106일 동안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1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질문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그래서 전쟁 이후 유가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이 해석이 너무 단순하다고 봤다.

중요한 건 얼마나 생산하느냐가 아니었다. 그 원유가 어디로 가느냐였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마을에 물 부족이 생겼다. 옆 마을이 생산량을 늘렸다. 그런데 늘어난 물이 전부 다른 부족한 지역으로 보내지고 있다면 — 여전히 이 마을 물은 부족하다. 석유 시장도 비슷했다.

내가 주목한 건 생산량 숫자가 아니라 수출 흐름이었다. Kpler 데이터를 보면 미국 원유 수출은 1월 392만 배럴/일에서 4월 544만 배럴/일로 약 39% 늘었다. 반면 미국 원유 수입은 1월 726만 배럴/일에서 6월 588만 배럴/일로 약 19% 줄었다. 미국이 더 많이 뽑아올린 원유가 국내에 쌓이기보다, 중동 공급이 막힌 자리를 메우는 쪽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봉쇄 — 2026년 3월
2026년 2월 28일 개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크게 위축됐다. 세계 원유 해상 교역의 핵심 길목이 막히면서 국제 유가는 3월 한 달에만 약 47% 올랐다. 6월 15일 예비 합의로 해협 재개방이 논의되고 있다.

2유가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비용이었다

유가는 배럴당 가격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쟁 기간 내내 내가 추적하던 변수가 네 가지였다. 두바이 원유 가격. 원/달러 환율. 전쟁위험 보험료. 나프타 가격. 더 중요한 건 이 변수들이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유가와 환율의 동행 상관은 +0.09에 불과했지만, 하루 시차를 두고 보면 상관은 +0.33까지 올라갔다. 유가가 오르면 다음 날 환율이 따라 오르는 패턴이었다.

브렌트 원유 3월 상승폭
+47%
3월 월간 기준 ($70.89 → $103.13) — 1990년 걸프전 이후 최대 수준 (Hermes Agent 분석)

아시아 나프타 현물가
$1,300/mt
3월 중순 고점 기준, 전쟁 전 대비 약 2배 (OPIS, 싱가포르) / 5~6월 $788/mt까지 하락

한국 PPI 상승률
+6.9%
2026년 4월 전년 동기 대비 — 28년 만의 최대 월간 상승폭 (한국은행)

원/달러 환율
1,490원
2026년 3월 평균 (Hermes Agent 분석) / 6월 초 1,526원까지 상승

한국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같은 원유를 사더라도 더 비싼 가격에, 더 비싼 보험료를 내고, 더 약해진 원화로 결제해야 했다. 미국이 보는 유가와 한국이 보는 유가는 전혀 다른 숫자였다. 나는 그 기간 내내 유가 헤드라인보다 수입물가 압력을 더 걱정했다.

3AI가 해결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다시 AI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시장은 전쟁 기간에도 AI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줬다. 이유는 단순하다. AI가 생산성을 높여서 인플레이션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생산성이 올라가면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걸 만들 수 있고,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이 만드는 인플레이션은 다른 문제였다.

유가 상승, 환율 상승, 보험료 상승, 운송비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 — 이 비용들은 AI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라지는 비용은 아니다. 오히려 AI 산업 자체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고,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를 요구한다. 그 투자 비용도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106일 동안 시장은 두 개의 흐름 사이에서 흔들렸다. 하나는 AI가 만드는 생산성. 다른 하나는 지정학이 만드는 비용 상승. 어느 쪽이 더 빠른지가 투자의 핵심 변수였다. 그리고 106일 내내 그 답은 나오지 않았다.

4한국 시장이 특히 취약했던 이유

미국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한국은 에너지를 수입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 일부 산업은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 반면 한국은 원유, LNG, 석유화학 원료, 운송 비용, 전력 비용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나프타 문제가 컸다.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 합성섬유, 포장재, 화학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따라 올라간다. 한국 에틸렌 크래커 가동률은 전쟁 이전 80%대에서 전쟁 이후 60%대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생산자물가(PPI)가 먼저 움직이고, 시간차를 두고 소비자물가(CPI)로 전이된다. 실제로 한국 PPI는 4월에 전년 대비 6.9% 올랐다. 전월 대비로는 2.5%로, 28년 만의 최대 월간 상승폭이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이 숫자가 다음 달 CPI에 반영되지 않는 건 아니다. 시차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기간 내내 CPI보다 PPI를 먼저 봤다.

전쟁 기간 한국 시장은 환율에 훨씬 민감해졌다. 직접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원달러 환율이 1% 오를 때 KOSPI는 약 2.6%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평소 민감도 약 -1.58보다 1.6배 강한 반응이다. 전쟁이 한국 시장에 전달된 가장 강한 통로는 유가가 아니라 환율이었다.

환율 상승 시나리오KOSPI 예상 변화 (1년 평균 β = -1.58)KOSPI 예상 변화 (전쟁 레짐 β = -2.60)
+3%약 -4.7%약 -7.8%
+5%약 -7.9%약 -13.0%
+10%약 -15.8%약 -26.0%

※ 선형 회귀 기반 추정치. 큰 충격일수록 비선형 반응 가능. 투자 권유 아님.

USD/KRW — KOSPI 민감도 회귀분석 그래프
환율과 KOSPI의 회귀분석. 전쟁 기간(70거래일)에서 민감도가 1년 평균 -1.58에서 -2.60으로 증폭됐다. 지정학 위기가 환율을 통해 KOSPI에 1.6배로 증폭 전달된 구조다.

5내가 보던 것은 유가가 아니었다

그 기간 내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었다. “유가가 더 오를 것 같으세요?”

솔직히 나는 그 질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유가 자체보다 유가가 만들어내는 구조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 유가 → 환율 → 수입물가 → PPI → CPI → 금리 → 증시

이 연결 고리가 유지되는지 관찰했다. 106일 동안 이 연결 고리는 실제로 작동했다. 브렌트가 올랐고, 환율이 올랐고, PPI가 올랐고, 그 다음이 CPI로 전이되려던 참이었다.

전쟁은 끝나도 비용은 남는다

2026년 6월 15일, 미국과 이란은 전쟁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포함한 예비 합의에 도달했다. 트럼프는 이를 종전 협상 타결로 발표했다. 다만 공식 서명은 6월 19일 스위스에서 예정되어 있고, 핵 프로그램과 제재 완화 등 핵심 쟁점은 60일 협상으로 넘어간 상태다. 전쟁은 멈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비용 충격이 곧바로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가는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위험 보험료도 줄어들 것이다. 선박 연료비도 정상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PPI에 박힌 6.9%는 시차를 두고 CPI에 반영된다. 환율이 쌓아올린 리스크 프리미엄은 하루아침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전쟁 기간 한국 에틸렌 크래커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진 것도 공장이 즉시 100%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더 큰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AI가 이 비용을 상쇄할 만큼 생산성을 만들 수 있을까. 전쟁 기간 내내 AI 밸류에이션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시장은 그 질문에 이미 답을 내린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아직 그렇게 확신하지 못한다.

이 글은 그 106일의 기록이다. 지정학 위기가 왔을 때 어떤 메커니즘이 어떤 순서로 작동하는지 — 다음번을 위한 참조점으로 남겨둔다.

⚠️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와 분석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Aleph가 제시하는 것은 시장 관찰 프레임워크이며, 매수·매도 신호가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AI 생산성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지 무엇으로 관찰할 수 있는지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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